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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가까이, 자세히 보아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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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울산한마음복지재단
작성일20-05-07 13:47 조회1,22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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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가까이, 자세히 보아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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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2012년 당시, 서울 광화문 교보생명 본사에 걸린 나태주 시인의 '풀꽃' 글판. 교보생명 제공  

 

(서울=뉴스1) 조성관 작가 = 교보생명은 서울 광화문 본사 외벽에 '광화문 글판'을 운영중이다. 이 글판에는 계절별로 명시 한 구절이 내걸린다. 신용호 교보생명 창업자가 1991년부터 내걸기 시작했으니 어느덧 햇수로 30년째. '광화문 글판'의 영향을 받아 우리은행 본사도 글판을 게시한다.

나는 광화문에서 오랜 세월 직장 생활을 했고, 은퇴한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은 광화문에 간다. 광화문에 나갈 때마다 '광화문 글판'을 살핀다. 가끔씩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기도 한다. '광화문 글판'은 언제나 고향마을 어귀의 500년 넘은 은행나무처럼 반갑고 정겹고 믿음직스럽다.

'광화문 글판'에 올라온 시들은 대부분 시의적절하게 선정을 잘했다는 느끼게 한다. 캘리그라피도 시의 메시지를 부드럽게 매만져준다. 이 중에 잊혀지지 않는 시 몇 개가 있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이 시는 2012년에 게시되었는데, 2015년 교보문고 설문조사에서 가장 사랑받은 '글판 시구' 1위에 뽑혔다. 사람이 공감하는 감성은 대체로 보편적이다. 그다음이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 장석주의 '대추 한 알', 정호승의 '풍경 달다' 순이었다.

나태주의 '풀꽃'은 나도 모르게 곧잘 중얼거린다. 세상을 배워갈수록 그 의미가 깊고 풍성해지는 게 '풀꽃'이다. 그때마다 두 사람이 자동적으로 연상된다. 한 사람은 19세기 프랑스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20세기 헝가리 사람이다.


잔 앙리 파브로


하찮은 것을 자세히 본 최초의 인간

먼저 프랑스 사람. 그는 1823년 프랑스 아베롱의 생레옹에서 겨우 문맹 수준을 벗어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인해 그는 멀리 떨어진 친할아버지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곳에서 초등학교를 마친 그는 아비뇽의 사범 중등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사범 중등학교 졸업 후 나폴레옹의 고향인 코르시카 섬의 아작시오에서 초등학교 교사생활을 시작했다.

얼마 뒤 그는 코르시카에서 아비뇽의 초등학교로 옮겨온다. 교사 생활 틈틈이 그는 곤충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그는 초등학교와 중등학교에서 생물학 같은 것을 배워본 일이 없었지만 생물에 흥미를 느꼈다.

1854년, 레옹 뒤프르의 소책자를 읽고 곤충 연구에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주변 마을을 답사했다. 들판, 산속, 개울가를 미친 듯이 돌아다녔다. 마을 사람들 눈에 그는 정신 나간, 미친 사람이었다. 그는 들판이나 개울가에 쭈그리고 앉아, 혹은 엎드린 채로 몇 시간이고 꼼짝하지 않고 곤충을 관찰했다. 관찰한 것을 글로써 소책자들을 펴냈다.

독자들은 내가 누구 이야기를 하려고 뜸을 들였는지 이미 눈치챘을 것이다. 장 앙리 파브르(Jean Henri Fabre 1823~1915)다. '파브르의 곤충기'의 작가 파브르. 40대 후반에 그는 교편을 내려놓는다.

자녀는 여덟 명으로 늘어났다. 연금만으로 기초 생활이 가능해지자 1878년 오랑 주 근처의 작은 마을 세리냥으로 들어간다. 과일, 야채, 포도주만으로 검박한 생활을 하며 그는 마을 주변을 돌아다니며 곤충을 관찰했다. 돌무더기 쌓여 있는 뒤란에서, 들판의 야생 백리향이나 라벤더 나무 덤불에서, 산비탈에서 종일 곤충을 관찰하며 메모를 했다.


1913년 세리냥 자택에서 집필 중인 파브르. 청년사 제공


그러다 해가 뉘엿뉘엿 서산에 기울 때면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오면 책상에 앉아 메모를 바탕으로 글을 썼다. 책상은 수건 한 장 펼쳐놓은 크기였다. 잉크병과 노트를 펴놓으면 딱 맞았다. 자녀들도 아버지의 곤충 탐험의 동반자가 되곤 했다. 말벌, 꿀벌, 쇠똥구리, 모기, 거미, 전갈 등이 그가 '자세히 보고, 오래 보아온' 대상들이다.

그는 하찮아 보이는 이런 생물들을 함부로 대하지도, 허투루 보지도 않았다. 그는 이런 생물들을 한없이 예쁘고 사랑스럽게 여겨 그들을 관찰하고 기록했다. 이 기록물이 축적되어 마침내 '곤충기'(Souvenirs entomologiques, 10권, 1879~1907)를 출간했다. 이 곤충기에는 자녀들이나 주변 인문들의 반응이 적절하게 삽입되어 읽는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그는 곤충도 인간과 함께 자연의 하나라는 밝혀냈다.

그는 빅토르 위고(1802~1885)와 찰스 다윈(1809~1882)과 같은 시대를 살았다. 그는 위고와 다윈을 만난 적이 없지만 위고와 다윈은 그의 '곤충기'에 감탄했다. 그의 저작들은 다윈의 집필에 영향을 주었다. 다윈은 파브르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위고는 그를 가리켜 '곤충의 호메로스'라고 극찬했고, 다윈은 '지상 최고의 관찰자'라고 평가했다.


로버트 카파


보도사진의 전설, 로버트 카파

20세기 헝가리 사람은 로버트 카파(Robert Capa 1913~1954)다. 41년의 짧은 생애를 살다 간 그의 이름 앞에는 여러 가지 형용 어귀들이 붙는다. 포토 저널리즘의 신화, 사진 역사상 가장 위대한 모험가, 보헤미안의 인생을 산 사진가, 포토 에이전시 매그넘의 창시자, 다섯 개 전쟁을 종군한 사진기자 ….

그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양복점을 운영하는 유대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열여덟살 때인 1931년 그는 유대인 박해를 피해 베를린으로 간다. 그곳에서 사진 에이전시 데포트의 암실 조수로 들어가면서 사진을 배운다. 그가 포토 저널리스트로 이름을 알리는 사건은 1932년 11월27일 코펜하겐 경기장에서 벌어졌다.

볼세비키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1879~1940)가 이 경기장에서 마지막 대중연설을 했다. 사진에는 스탈린의 살해 협박을 받고 있던 트로츠키의 불안과 초초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사진은 스페인 내전에서 찍은 '쓰러지는 병사'다. 전쟁의 최전선에서 순간을 포착하는 사진 한 장으로 포토 저널리즘을 창조해냈다. 카파 이전에 그처럼 총알이 철모를 스치는 최전선을 고집한 사진가는 없었다. '사진 역사상 가장 위대한 모험가'라는 수식어처럼 그는 결정적인 장면을 잡으려 어떤 위험도 피하지 않았다.

스페인 내전, 중일전쟁, 2차세계대전, 1차중동전쟁, 인도차이나전쟁 5개 전장을 누볐다. 그의 용기는 경이롭다. 자기희생과 위험을 무릎 쓴 취재 정신을 가리켜 '카파이즘'이라고 부른다. 사진의 심도(深度)는 한발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서 찍는 데서 나온다는 것을 그는 스스로 증명했다.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오마하 해변에 상륙하는 미군들. 로버트 카파


나의 주관적 판단으로 최고의 사진은 1944년 6월 6일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사진이다. 노르망디 오마하 해변에서 쏟아지는 총탄 사이로 들어 올렸던 카메라! 절박한 순간에 카메라는 흔들렸고 초점은 맞지 않았다. 바로 심하게 흔들린 그 사진이 그날의 오마하 해변의 리얼리티를 그대로 전달한다.

이 사진은 6월19일 미국의 '라이프'지에 표지로 실렸다. 파리가 나치독일의 지배에서 해방되던 날 샹제리제의 표정을 포착한 사진가도 카파였다. 샹젤리제를 행진하는 드골에 환호하는, 기쁨에 찬 파리 시민들의 표정은 그로 인해 순간에서 영원이 되었다.

그는 전쟁이 터지면 잉그리드 버그만과의 달콤한 데이트도 미뤄둔 채 즉시 전장으로 날아갔다. 1954년 5월25일 인도차이나전쟁에 참전한다. 그는 진격하는 프랑스군과 함께 걸어가다가 지뢰를 밟고 현장에서 사망한다. 전쟁 사진의 전설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최후였다.

나는 영국 파이돈(Phaidon)에서 출간한 572쪽짜리 사진집 '로버트 카파'(Robert Capa)를 갖고 있다. 이 사진집에는 그가 찍은 937장의 사진이 실려 있다. 그가 41년의 생애 동안 찍은 사진들을 한 장씩 넘기다 보면 20세기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흘러간다. 그때마다 '펜'이 무력하게만 느껴진다. 937번째, 마지막 사진을 찍은 날짜가 1954년 5월25일. 지뢰를 밟기 직전에 찍은 사진이다.

카파는 사진에 관한 여러 가지 명언을 남겼다. 그중 내가 오랜 세월 간직하고 있는 말은 이것이다.

"만약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건 충분히 가까이에서 찍지 않았기 때문이다."

author@naver.com @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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