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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世界記錄遺産) 16 – “조선통신사 기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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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울산한마음복지재단
작성일20-12-28 10:02 조회96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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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世界記錄遺産) 16 – “조선통신사 기록물”


조선통신사기록물[朝鮮通信使 記錄物]


요약 : 1607년부터 1811년까지 조선이 일본에 파견된 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와 관련한 자료를 총칭


1404년(태종 4) 조선과 일본 사이에 교린관계가 성립되자, 조선과 일본은 서로 사절을 파견하는 외교체제가 이루어졌다. 조선 국왕과 일본 막부 장군은 양국의 최고통치자로서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사절을 서로 파견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이때 조선의 사절을 통신사, 일본의 사절을 일본국왕사(日本國王使)라고 부르기로 하였다. ‘통신(通信)’은 두 나라가 서로 신의(信義)를 통해 교류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초기 조선에서 파견한 사절의 명칭은 ‘보빙사(報聘使)’ ‘회례사(回禮使)’ ‘회례관(回禮官)’ ‘통신관(通信官)’ ‘경차관(敬差官)’ 등 여러가지가 있었다. 통신사란 명칭이 처음 쓰인 것은 1413년(태종 13년) 박분(朴賁)을 정사(正史)로 한 사절단이었지만, 중도에 정사가 병이 나서 그만 중단되고 말았다. 그후 교토(京都)에 있는 막부까지 다녀온 첫 통신사는 1429년(세종 11년)에 박서생(朴瑞生)을 정사로 파견된 사절단이다.

역대 통신사의 파견은 양국 정세의 변화에 따라 능동적으로 목적을 달리했는데, 임진왜란 이전에는 왜구의 소요 등에 대한 금지 요청이 위주였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강화와 포로의 생환이나 일본 국정의 탐색에 주안점을 두었으며, 1636년(인조 14년)부터는 막부 장군의 즉위를 축하하는 것이 주요 임무였다. 이때부터 통신사 파견 절차는 대체로 정형화되었다. 즉 일본에서 새로운 막부 장군의 습직(襲職)이 결정되면, 조선과 특수한 관계에 있는 쓰시마 도주(對馬島主)는 막부의 명령을 받아 통신사청래차왜(通信使請來差倭)를 조선에 파견한다.


그러면 조선 조정에서는 중앙관리 중 정사 · 부사 · 서장관(書狀官)을 임명하여 300~500명으로 구성되는 사절단을 편성한다. 여정은 한양을 출발해 부산까지는 육로로 간 뒤 거기서부터는 쓰시마 도주의 안내를 받아 해로로 쓰시마섬을 거쳐 시모노세키(下關)를 통과해 일본 각 번(藩)의 향응을 받으며 오사카(大阪)의 요도우라(淀浦)에서 상륙한다. 여기서 육로로 조선 전기에는 교토까지, 후기에는 더 멀리 도쿄까지 행차한다. 사절단이 지나가는 객사에서는 시문(詩文)과 학술의 필담창화(筆談唱和)라는 특이한 문화교류 행사가 거행되곤 한다.

막부 장군에게 조선 국왕의 국서를 전달하기까지는 대개 6개월~1년이 걸린다. 사절단은 방문하는 곳마다에 서화나 시문 등 작품을, 일본 측은 또 나름대로 환영 병풍이나 판화 같은 작품을 남겨놓았다. 사절단마다 귀국 후 일본 현지 견문록을 남겼는데, 그것이 『해행총재(海行摠載)』란 견문록 문집으로 엮어져 당시 한 · 일 두 나라간의 외교와 교류의 실상을 전해주고 있다.


[기록물의 내용]

조선통신사 관련 기록물은 한일 양국의 외교 문서, 여정 기록, 문화 기록, 서화 작품 등 총 111건 333점으로 구성되었다. 이 중 한국 측 자료는 63건 124점, 일본 측 자료는 48건 209점이다. 한국의 자료는 국립중앙도서관 24건, 부산박물관 10건, 국립해양박물관 4건, 국립중앙박물관 6건, 국사편찬위원회 5건, 서울대학교규장각 6건, 국립고궁박물관 3건, 고려대학교도서관 4건, 충청남도역사박물관 1건의 구성이다.

이 중 조선 정부의 기록으로는 『통신사등록(通信使謄錄)』, 『변례집요(邊例集要)』와 같은 문서가 있다. 아울러 『동사일기(東槎日記)』처럼 통신사의 사절단으로 참석한 인물이 기행문과 일기를 남긴 경우도 있다. 문헌 기록뿐만 아니라 김명국(金明國), 한시각(韓時覺), 변박(卞璞)과 같은 통신사 수행 화가들이 그린 서화도 포함되었다.

일본 측 자료는 총 48건 209점이 대상이다. 여기에는 「조선국서(朝鮮国書)」, 「조선신사어기록(朝鮮信使御記録)」, 「후쿠오카번 조선통신사기록(福岡藩朝鮮通信使記録)」과 같은 문서 기록과 「조선통신사상관래항도(朝鮮通信使上関来航図)」, 「조선통신사환대도병풍(朝鮮通信使歓待図屏風)」, 「조선통신사어루선도병풍(朝鮮通信使御楼船図屏風)」 같은 그림이 포함되었다.



[가치와 의의]

조선통신사 기록물은 조선이 임진왜란이 끝난 뒤인 1607년부터 1811년까지 200여 년간 막부의 요청으로 일본에 12차례 파견한 외교사절에 관한 기록이다. 이 자료는 양국이 외교뿐만 아니라 학술, 예술, 산업, 문화 분야에서 교류한 성과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높다. 아울러 한국과 일본 양국이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공동으로 추진하였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특히 이 사업은 한일의 중앙 정부가 아니라 민간 단체가 주도하여 성사가 되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등재]

본 기록물의 등재는 2013년부터 부산시와 나가사키현의 지원 속에 한국의 부산문화재단과 일본의 NPO법인 ‘조선통신사 연고지 연락협의회(연고지연합, 나가사키현 쓰시마시)’가 노력하여 얻은 결실이다.

두 단체는 본 기록물을 2016년 3월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심사에 공동 신청하였으며, 2017년 10월 31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13차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IAC·International Advisory Committee of the UNESCO Memory of the World)에서는 본 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에 공식 등재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조선통신사에 관한 기록[朝鮮通信使 記錄物] (두산백과)

◉ 우리나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16건)

1. 훈민정음(1997)

2. 조선왕조실록(1997)

3. 직지심체요절(2001)

4. 승정원일기(2001)

5. 조선왕조의궤(2007)

6. 해인사 대장경판 및 제경판(2007)

7. 동의보감(2009)

8. 일성록(2011)

9. 광주민주화운동 기록물(2011)

10. 난중일기(2013)

11. 새마을운동 기록물(2013)

12. KBS 이산가족찾기 기록물(2015)

13. 한국의 유교책판(2015)

14. 조선왕조어보(2017)

15. 국채보상운동 기록물(2017)

16. 조선통신사 기록물(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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