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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世界記錄遺産) 15 –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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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울산한마음복지재단
작성일20-12-21 12:14 조회77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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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世界記錄遺産) 15 –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Archives of the National Debt Redemption Movement]

요약 : 국채를 갚기 위하여 대한제국 국민이 벌였던 국채보상운동의 전 과정을 보여주는 기록물이다. 주요 문적 200여종을 포함하여 수기, 언론, 정부기록물까지 총 2,475건의 문건으로 이루어져 있다.


1907년부터 1910년까지 전개된 국채보상운동의 내용을 보여주는 각종 기록물들을 총체적으로 정리한 자료이다. 2007년 대구시에서 발간한 국채보상운동 100주년 기념자료집을 통해 모은 약 8,000여종의 자료 중 핵심이 되는 2,475건의 기록물을 엄선한 것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공식 등재되었다.


일본은 1894년 청일전쟁 때부터 조선에 적극적으로 차관을 주어 수차례에 걸쳐 수 천 만원대의 차관 대여를 성립시켰다. 이는 조선의 재정을 일본에 예속시킴으로써 조선의 식민지화를 가속시키고자 한 방편 가운데 하나였다. 19세기 말 유럽의 제국주의 열강은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등의 피식민지 국가에 차관을 빌려주고 그것을 빌미로 지배력을 강화하는 정책을 펼쳤다. 당시 조선인들은 베트남, 인도, 폴란드, 이집트, 오키나와 등이 이미 외채로 국권을 잃은 현상을 목도함으로써 일본에 진 국채(國債)를 갚아 망국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국채보상운동 내용]

1907년 2월 대구의 광문사(廣文社)의 김광제(金光濟)와 서상돈(徐相敦)은 술과 담배를 끊어국채를 갚아 나가자는 국채보상운동을 제창하였다. 광문사는 조선의 지식인과 민족 자산가가 의기투합하여 만든 출판사였다. 이들은 1907년 2월 21일자 『대한매일신보』에 ‘국채 1천 3백만 원은 바로 우리 대한제국의 존망에 직결되는 것으로 갚지 못하면 나라가 망할 것인데 국고로는 해결할 도리가 없으므로 2천만 인민들이 3개월 동안 흡연을 폐지하고 그 대금으로 국고를 갚아 국가의 위기를 구하자’라고 발기 취지를 밝혔다. 이 발기문은 『대한매일신보』, 『황성신문』 등의 언론을 통하여 각계각층에 퍼져 나갔다.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전국에서 ‘국채보상’을 목표로 하는 수십 개의 국채보상운동단체가 창립되었다.


처음에 이 운동은 민족자본가와 지식인에 의해 각종 단체, 학회, 학교, 언론기관 등을 중심으로 전개되었으나 점차 유림(儒林)과 지방의 일반인들에게도 전파되었다. 특히 여성 부녀층이 이 운동에 참가하면서 모금액이 급증하였다. 급기야 노동자, 인력거꾼, 기생, 백정, 걸인 등의 하층민까지 합세하여 말 그대로 범국민적인 운동이 되었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외국인이 국내에서 발간하는 영자 신문을 포함하여 해외 이주민들이 국외에서 발행하는 신문을 통해서 이 운동이 대대적으로 해외에 알려지게 되었다. 1907년 네델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서도 국채보상운동이 소개되었다. 이는 외채에 시달리는 다른 피식민지국에 큰 영향을 주게 되었다.


[기록물의 종류]

본 기록물은 회고문, 통감부 문서, 수기, 정부기록물, 신문기사 등을 합쳐 총 2,475건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는 국채보상운동 취지서, 국채보상운동 광고, 지역 의연금 및 명단 수록 장부, 국채보상운동 전국본부 규칙 및 양식 규격, 국채보상연합회 발기인 명단, 한국 주재 미국총영사가 본국에 보낸 국채보상운동 관련 공문, 통감부 외무부에서 국채보상금모집과 관련하여 취급한 공문서, 신문에 기재된 모금액 보고문 등이 총 199종이며 『대한매일신보』, 『황성신문』, 『만세보』, 『공립신보』, 『신한민보』, 『신한국보』, 『경성신문』, 『권업신문』 등의 언론 기사가 2,000여종 포함되었다.

[의의 및 가치]

대한제국의 국채보상운동은 전세계적으로 가장 앞선 시기에 국채를 갚기 위하여 국민의 약 25%가 자발적으로 벌인 모금 운동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이후 이 운동은 하나의 효시가 되어 1909년 중국, 1938년 멕시코, 1945년 베트남의 국채보상운동에 영향을 끼쳤다, 아울러 일제강점기에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난 유적지가 훼손되고 국채보상운동을 세상에 알린 『대한매일신보』가 일본의 기관지로 전락하는 등의 우여곡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국채보상운동과 관련한 상당수의 기록물이 온전히 보존되어 있다는 점도 주목을 요한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과정]

본 기록물은 2015년 문화재청의 심사 과정을 거쳐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 신청대상으로 최종 통과되었고 2016년 3월 유네스코에 등재신청이 완료되었다.

2017년 10월 24~27일에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13차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IAC·International Advisory Committee of the UNESCO Memory of the World)에서 최종 선정되어 같은 달 31일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공식 등재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국채보상운동 기록물[Archives of the National Debt Redemption Movement]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세계기록유산(영/불어 원문))

◉ 우리나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16건)

1. 훈민정음(1997)

2. 조선왕조실록(1997)

3. 직지심체요절(2001)

4. 승정원일기(2001)

5. 조선왕조의궤(2007)

6. 해인사 대장경판 및 제경판(2007)

7. 동의보감(2009)

8. 일성록(2011)

9. 광주민주화운동 기록물(2011)

10. 난중일기(2013)

11. 새마을운동 기록물(2013)

12. KBS 이산가족찾기 기록물(2015)

13. 한국의 유교책판(2015)

14. 조선왕조어보(2017)

15. 국채보상운동 기록물(2017)

16. 조선통신사 기록물(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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